“결국 한국말고는 답이 없어”… 서방에 막힌 러시아가 보낸 ‘제안’, 세계가 놀랐다

서태웅 기자

발행

러시아 국가 형성과 서구화·슬라브주의 갈등 역사
1990년 한소 수교 이후 군사·우주 협력 진행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 극동 전략 변화

러시아는 9세기 키예프 루스에 뿌리를 둔 국가다. 882년 올레크가 키이우로 수도를 이전하며 형성된 이 국가는 러시아·우크라이나·벨라루스의 공통 역사 기반으로 기록되며, 1237년부터 시작된 바투 칸의 몽골 침공으로 약 240년에 걸친 킵차크 칸국 지배를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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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서 형성된 중앙집권적 정치 구조는 이후 러시아 국가 운영 방식에 깊은 영향을 남겼다.

피터 대제는 18세기 행정·군사·해군·도시 건설 전반에 걸친 서구화 개혁을 추진했다. 반면 슬라브주의는 정교회 전통과 러시아 고유 문명을 강조하며 맞섰고, 이 두 노선의 긴장은 오늘날까지 러시아 외교 전략의 저변에 흐른다.

냉전의 벽을 넘은 한소 수교

1990년 한소 정상회담
1990년 한소 정상회담 / 사진=대통령 기록관

한국과 소련은 1990년 9월 30일 뉴욕 유엔 본부에서 외무장관이 서명하며 공식 수교했다. 이는 냉전 구조 속에서 이뤄진 외교 전환점이었으며, 이후 양국 협력의 제도적 기반이 됐다.

한편 1991년 12월 소련이 공식 해체되면서 러시아 경제는 급격한 민영화·충격요법을 거쳤고, 1991년부터 1998년 사이 실질 GDP가 약 30% 감소했다.

1998년 8월 17일에는 루블화 평가절하와 함께 모라토리엄이 선언됐으며, 이로 인한 서방에 대한 불신이 푸틴 체제의 등장을 가속한 배경이 됐다.

불곰사업·나로호, 군사·우주 분야 협력의 성과와 한계

K-2 전차
K-2 전차 / 사진=연합뉴스

1995년 시작된 불곰사업은 러시아 군사 기술을 한국의 대러 채무 현물 상환 방식으로 제공한 협력 사업이다. 이 사업을 통해 천궁·신궁 방공미사일, K-2 전차, 현무 미사일 등 한국 독자 무기 개발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나로호(KSLV-Ⅰ) 사업도 2004년 한·러 기술협력 협정에 근거해 러시아 에네르고마쉬의 RD-151 엔진을 1단 로켓으로 적용했으며, 개발비는 약 5,000억 원이 투입됐다. 1·2차 발사 실패를 거쳐 2013년 3차 발사에서 나로과학위성 저궤도 진입에 성공했다.

신동방 정책과 극동 개발

훈련중인 러시아 군인
훈련중인 러시아 군인 / 사진=연합뉴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방의 에너지·금융·기술 분야 제재가 확대되면서, 러시아는 아시아·유라시아 파트너로의 전환을 가속하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 자유항 지정과 12개 선도개발구역 법인세 감면, 2015년부터 정례화된 동방경제포럼이 그 제도적 축이다. 푸틴은 2023년 9월 동방경제포럼에서 극동 개발을 “21세기 러시아의 최우선 과제”로 명시했다.

다만 극동연방관구 면적 약 618만 km²에 인구 약 820만 명에 불과한 구조적 공백과, 과거 국경 분쟁 역사를 가진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 심화가 동시에 진행 중이라는 점은 지역 역학의 복잡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제재 속에서도 남은 협력 자산

K9 자주포
K9 자주포 / 사진=연합뉴스

수교 35년을 맞은 한러 관계는 제재 국면에서 협력 구조의 재편이 불가피한 상황에 놓였다. 불곰사업과 나로호로 이어진 실물 협력의 경험이 향후 어떤 형태로 이어질 수 있을지, 제도적 접점과 리스크 관리를 함께 점검할 시점이다.

특히 러시아의 신동방 정책이 아시아 파트너 확대를 가속하는 가운데, 한국이 극동 개발 협력에서 어느 수준의 관여를 유지할 것인지가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제재 리스크와 협력 실익 사이의 균형점을 어디에 설정하느냐가 향후 대러 전략의 방향을 결정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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