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었던 美의 ‘토사구팽’… 9조 원 투자 유치로 돌아온 건 한국인 ‘475명’ 구금

by 서태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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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그룹-LG 배터리 공장 미국 단속 사태
한국인 300여 명 포함 총 475명 구금
공장 가동 차질 불가피, 정부는 총력 대응

미국 제조업 부활의 상징이 되어야 할 현장이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벌어진 일은 한미 동맹의 심장부를 겨눈 듯한 충격 그 자체였다.

양손과 다리에 체인을 묶는 단속요원
양손과 다리에 체인을 묶는 단속요원 / 사진=ICE 홈페이지 영상 캡처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이 공개한 영상 속에서 현대자동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 한국인 근로자들은 팔과 다리가 쇠사슬에 결박된 채 버스에 올랐다.

한미 경제 안보 협력의 최전선에서 동맹국 국민이 범죄자처럼 구금되는 모습은 한국 사회에 거대한 파문을 일으켰고, 양국 관계를 순식간에 외교적 시험대로 몰아넣었다.

현대차그룹 미국 조지아주 전기차 전용공장 조감도
현대차그룹 미국 조지아주 전기차 전용공장 조감도 / 사진=현대차그룹

사건의 발단은 ‘저전압 작전(Operation Low Voltage)’이라는 작전명 아래 400명이 넘는 연방 및 주 요원들이 조지아주 엘라밸의 ‘HL-GA 배터리 회사’ 건설 현장을 급습하면서 시작됐다.

국토안보수사국(HSI) 주도로 이뤄진 이 작전은 현장에서 총 475명의 불법 고용 인력을 적발했으며, 이 중 300여 명이 한국인이었다. 미국 당국이 내세운 법적 근거는 명확했다.

불법 외국인 고용 및 은닉 등을 금지한 미 연방법전 제8편 제1324조 위반 혐의였다. 구금된 한국인 근로자 대다수는 단기 상용 목적의 B1 비자나 전자여행허가(ESTA)로 미국에 입국해, 현장 노무가 금지됨에도 불구하고 설비 공사 등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인 구금된 미국 이민 당국 시설 내부
한국인 구금된 미국 이민 당국 시설 내부 / 사진= 미국 국토안보부

미국 측은 이번 단속이 수개월간의 내사를 거친 정당한 법 집행이며, “조지아 주민과 미국인의 일자리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9조 원이 투입된 이 대형 프로젝트 자체가 미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인센티브 속에 유치된 ‘미국 내 일자리 창출’의 대표 사례라는 점에서 심각한 모순을 드러냈다.

동맹국과의 경제 협력 유치와 강경한 이민 정책이라는 두 국가 목표가 정면으로 충돌한 것이다. 이 충돌의 희생양은 결국 핵심 기술 설비를 구축하기 위해 파견된 한국인 기술자들이었다.

미 조지아주 서배너 엘라벨에 위치한 HMGMA
미 조지아주 서배너 엘라벨에 위치한 HMGMA / 사진=현대차그룹

사태의 파장은 즉각적이고 치명적이었다. 2026년 초 가동을 목표로 순항하던 공장 건설은 전면 중단됐다. 이는 연간 30만 대 분량의 전기차 배터리를 생산해 현대차그룹의 미국 내 전기차 생산을 뒷받침하려던 핵심 공급망 전략에 제동이 걸렸음을 의미했다.

경제적 손실을 넘어, 쇠사슬에 묶인 근로자 영상이 불러온 외교적 후폭풍은 더욱 거셌다. 이재명 대통령이 ‘총력 대응’을 지시했고, 외교부는 장관을 본부장으로 하는 재외국민보호대책본부를 즉시 가동했다.

미국 국무부와 주한미국대사관에 공식적인 유감을 표명하는 등 정부는 전방위적인 외교전에 돌입했다.

재외국민보호대책본부-공관 합동대책회의
재외국민보호대책본부-공관 합동대책회의 / 사진=연합뉴스

다행히 숨 가쁘게 돌아간 72시간의 외교적 노력 끝에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 현지시간 7일, 한미 당국은 구금된 한국인 근로자 전원을 석방하고 전세기를 통해 즉시 귀국 조치하는 데 극적으로 합의했다.

외교적 마찰이 파국으로 치닫기 직전 양국이 출구를 찾은 셈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깊은 상처와 과제를 남겼으며, 급한 불은 껐다.

하지만 멈춰버린 공장을 어떻게 재가동할 것인지, 향후 필요한 전문인력을 어떻게 안정적으로 공급할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단기 파견 기술자들을 위한 비자 제도의 현실화 등 양국 간 풀어야 할 구조적 숙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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