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돈 14만 원에 팔았던 현대차 공장”… 결국 재매입 포기하고 사실상 철수

by 김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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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러시아 공장 2년 바이백 옵션 만료
지정학적 리스크 해소 안 돼 재진출 포기

현대자동차가 2023년 12월 1만 루블, 한화 약 14만 원에 매각했던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을 다시 사지 않기로 했다. 매각 계약에 포함된 2년 바이백 옵션이 지난 1월 말 만료됐지만, 현대차는 재매입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다.

현대차 러시아 공장
현대차 러시아 공장 /사진=연합뉴스

이로써 현대차는 2010년부터 운영해온 러시아 공장을 완전히 손에서 놓게 됐다. 장부가 기준 약 2,800억 원대 손실을 감수한 채 사실상 러시아 시장에서 철수하는 것이다. 다만 현대차는 “완전 철수는 아니며, 시장 상황을 계속 지켜볼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23.6% 점유율 1위에서 추락, 전쟁이 모든 걸 바꿨다

현대차 러시아 공장 생산라인
현대차 러시아 공장 생산라인 /사진=연합뉴스

현대차와 기아는 러시아 시장에서 성공 신화를 썼다. 2004년 엑센트의 인기로 토요타를 제치며 시장 진출 기반을 마련했고, 2007년 현지 법인을 설립했다. 2010년 9월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당시 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을 준공했다.

초기 연간 생산능력 15만 대로 시작한 공장은 이후 23만 대로 확대됐고, 2020년에는 제너럴모터스 공장을 인수해 연산 10만 대를 추가로 확보했다.

현대차 러시아 공장 생산라인
현대차 러시아 공장 생산라인 /사진=현대자동차

2020년 기준 누적 생산량은 210만 대를 넘어섰으며, 2021년에는 현대차와 기아를 합쳐 시장점유율 23.6%로 러시아 내 1위를 기록했다. 연간 판매량도 약 38만 대에 달했다.

하지만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로 모든 것이 무너졌다. 서방 제재로 부품 수급이 끊기면서 공장은 2022년 3월 가동을 전면 중단했다. 1년 9개월 동안 공장을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한 현대차는 2023년 12월 19일 임시이사회에서 매각을 결정했다.

2년 바이백 조건으로 재진출 여지 남겼지만

현대차 러시아 공장
현대차 러시아 공장 /사진=연합뉴스

현대차는 러시아 벤처캐피탈 아트파이낸스에 공장을 1만 루블, 당시 환율로 약 14만 원에 넘겼다. 상징적인 가격이었다. 하지만 매각 계약에는 2년 이내 공장을 재매입할 수 있는 바이백 옵션이 포함됐다. 재진출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바이백 기간은 2024년 1월부터 2026년 1월까지였다. 전쟁이 끝나거나 제재가 완화되면 공장을 되사서 러시아 시장에 복귀할 수 있는 카드였다. 세계 주요 완성차 업체 중 가장 늦게까지 철수를 미룬 것도 이런 전략적 고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2026년 1월 말 바이백 만료 시점이 다가왔을 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장기화됐고, 지정학적 리스크는 해소되지 않았다. 서방 제재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결국 현대차는 재매입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다.

중국 브랜드 장악한 시장, 재진출 의미 퇴색

현대차 러시아 공장 생산라인
현대차 러시아 공장 생산라인 /사진=현대자동차

바이백 포기 결정에는 시장 환경 변화도 영향을 미쳤다. 현대차와 기아가 철수한 이후 러시아 시장은 중국 브랜드가 장악했다. 라다, 체리, 하발, 지리, 창안 등이 판매 1~5위를 석권하며 시장 구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2023년 기아의 러시아 판매량은 5만 8,238대로 전년 대비 51% 감소했다. 현지 생산이 중단되고 수입차로만 판매하면서 가격 경쟁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공장을 되찾더라도 이미 중국 업체에게 넘어간 시장을 되찾기는 쉽지 않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완전 철수는 아니다, 상표권 유지하며 시장 모니터링

현대차 러시아 공장
현대차 러시아 공장 /사진=현대차그룹

그럼에도 현대차는 “완전 철수는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상표권을 유지하며 기존 고객에 대한 사후관리를 계속하고, 시장 상황을 예의주시하겠다는 것이다. 러시아 법상 상표권을 3년간 사용하지 않으면 취소되기 때문에, 최소한의 활동은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전쟁이 종료되고 제재가 해제되면 재진출을 검토할 여지를 남겨둔 셈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재진출 시점과 조건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지정학적 리스크가 사라지지 않는 한, 러시아 시장은 현대차에게 다시 매력적인 선택지가 되기 어렵다.

2004년부터 시작된 현대차의 러시아 성공 신화는 20여년 만에 막을 내렸다. 14만 원에 매각한 공장은 다시 사지 않기로 한 결정은, 글로벌 자동차 업계가 직면한 지정학적 리스크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시장 성과만으로는 예측할 수 없는 변수들이 기업의 운명을 좌우하는 시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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