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주유소에 ‘내일 가격 표시제’ 도입
하반기 고속도로 주유소 100곳 시범 운영
소비자 알 권리vs현실 모르는 탁상행정
정부가 고유가 시대 소비자 부담을 덜겠다며, 주유소가 다음 날 판매할 기름값을 미리 공개하는 ‘내일 가격 표시제’를 올 하반기부터 시범 도입한다.

정부는 가격 투명성을 높여 합리적인 소비를 유도한다는 입장이지만, 주유소 업계는 “현실을 모르는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며 집단행동까지 예고하는 등 강력히 반발하고 있어 진통이 예상된다.
이 제도는 국내 기름값 책정 구조에 기반한다. 국내 정유사들은 아시아 석유제품 거래의 기준이 되는 싱가포르 현물가(MOPS)가 확정되면, 이를 기준으로 다음 날 국내 공급가격을 정한다.
정부는 이 원리를 이용해, 주유소들이 전날 오후 5시경 결정된 가격을 미리 표시하게 함으로써, 소비자들이 ‘내일 가격이 오를지 내릴지’ 예측하고 주유 시점을 결정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한국주유소협회는 이 제도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비판한다. 협회에 따르면, 대부분의 주유소는 2주에서 한 달에 한 번꼴로 유류를 공급받아 재고로 쌓아두고 판매한다.
매일 기름값이 바뀌는 정유사와 달리, 주유소의 판매 가격은 재고가 소진될 때까지 거의 변동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매일 ‘내일 가격’을 표시해봐야, 대부분 ‘오늘과 같은 가격’일 것이므로 소비자에게 아무런 실익이 없는 보여주기식 행정이라는 주장이다.

이번 갈등의 이면에는, 정부와 주유소 업계의 근본적인 시각차가 존재한다. 정부는 ‘완전 경쟁’을 통해 가격 안정을 유도하려 하지만, 주유소 업계는 정유사와 카드사 수수료, 인건비 상승 등으로 이미 한계 상황에 내몰렸다며 ‘안정적인 가격 구조’를 원하고 있다.
이 때문에 협회는 차라리 과거에 시행됐던 ‘석유류 가격고시제’를 부활시켜, 정부가 매일 기준가격을 정해주는 것이 소비자 혼란을 줄이고 업계의 과도한 경쟁을 막는 길이라고 역제안하고 있다.
또한, 정부의 ‘내일 가격 표시제’가 정식으로 도입될 경우 1만여 주유소의 뜻을 모아 집단행동에 나설 수 있다고도 경고했다.

소비자의 알 권리와 시장 투명성 확보라는 정부의 정책 목표는 분명 타당하다. 하지만 ‘2주치 재고’를 안고 장사하는 주유소 현장의 목소리 또한 외면할 수 없다.
올 하반기 고속도로 주유소 100곳에서 시작될 이번 시범사업이, 정부의 기대처럼 합리적인 소비를 이끄는 성공적인 제도로 안착할지, 아니면 업계의 주장처럼 불필요한 행정 부담만 가중시키는 실패한 정책으로 남을지, 그 결과에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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